돈으로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고 인간이 지닌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도 결국 인신매매의 범죄행위와 같은 것이다. 인간은 돈에 의해서 살 수 없으며, 또한 돈에 의해서 팔 수도 없으며, 돈에 의해서 지배받거나 돈에 의해서 복종할 수도 없는 단 하나의 존재인 것이다.
장사란 이익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윤이며, 따라서 신용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인 것이다.
어떤 형태의 '옳은 일'은 크건 작건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그와는 반대로 어떤 형태든 '옳지 않은 일'은 크건 작건 그냥 사라지는 법이 없이 반드시 나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진리다.
너는 네 손으로 꽃을 꺾어 꽃의 생명을 꺾지는 않았으니 분명히 자비심을 갖고 있다. 장사란 것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돈을 벌기 위해서 남을 짓밟거나, 이를 추구하기 위해 남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무자비한 일을 해서는 아니된다. 너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심을 갖고 있으니 반드시 장사로 큰 성공을 거둘 것이다. 또한 너는 방안에 있던 꽃을 들어 내게 가져왔다. 너는 꽃을 가져오기 위해 먼 곳을 돌아 헤매지 않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꽃을 발견하는 눈을 가졌다. 무릇 재화란 멀리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이며, 성공 또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곁에 있는 것이다. 너는 가장 가까운 곳에 복과 재화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의 화합이 모든 일을 이룬다(가화만사성) 는 옛말을 실천하고 있으니 이 또한 복이 있을 징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너는 방안에서 꽃을 구하였으니 평생 주색잡기와 같은 허망한 일로 세월을 허송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과 땅이 비롯된 것은 바로 오늘이다.
불교에 있어 남에게 은덕을 베푸는 일을 보시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남에게 베푼 선행을 기억하고 항상 이를 자랑한다. 때문에 은덕을 베풀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한 인간은 그 베푼 사람에 대해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되며 또한 섭섭해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햇빛은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없이 내리쬐어 곡식을 익히고 과일을 맺게 한다. 비는 인간에게 베푼다는 생각 없이 마른 대지를 적시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완성한다. 이 세상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남을 위해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색을 낸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생각조차 없이 하는 베풂, 이를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머무름이 없는 보시인 것이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말라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한 명은 반드시 나의 스승이다. (三人行 必有我師)
세 명의 이로운 벗과 세 명의 해로운 벗이 있다. 정직하고 성실하며 박학다문한 벗이면 이로운 벗이며, 아첨하여 정직하지 못한 자와 신용없이 간사한 자와 진실한 견문 없이 말을 잘 둘러대는 자는 해로운 벗이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됨으로써 만물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마음의 본체는 원래 선과 악이 없는 것이다. 선과 악이 나타나는 것은 뜻의 작용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나타난 선과 악을 구별하여 아는 것이 양지이며 선을 행하고 악을 버려 마음의 본체로 돌아가는 것이 격물인 것이다. 격물치지 -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자신의 잘못을 바르게 잡고, 선천적인 양지로 갈고 닦는다는 유명한 철학이 바로 양명학의 골수이다.
김정희는 스승 옹방강이 갓씨와 같은 참깨 위에 '天下太平'의 넉자를 새겨넣는 못브을 보고 당나라의 이발이 만 권의 책을 읽어 '이만권'의 별명으로 불렸던 것처럼 자신도 만 권의 책을 가슴에 담지 않으면 '갓씨 속에 수미산이 들어 있다'는 진리의 구경에 닿을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달았던 것이다.
옹방강 스승은 이르기를 '나는 옛 경전을 좋아한다'고 말하시고, 완원 스승은 이르기를 '남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 두분의 말씀이 내 평생을 모두 다 나타내었다.
모든 정치, 종교, 예술 인간사회의 일들은 자기 자신을 버리고 자아 포기의 죽음이란 무(無)를 반드시 통해야만 생명의 기쁜인 존재의 유(有)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인 것이다. 추사 김정희를 통해 이순신의 '반드시 죽으려 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살려 하면 죽을 것이다'란 문장을 접하게 된다.
나는 너의 스승이 아니다. 나는 다만 너보다 앞서온 선인에 지나지 않는다. 너의 참 스승은 바로 이것 하나뿐인 것이다. 이것을 너의 스승으로 삼아라. 옛말에 이르기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하였다. 너는 이것을 너의 스승으로 삼아서 마침내 스승을 죽여 네 자신만의 해탈의 극칙을 이루리라.
장사란 이익을 보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고 나 혼자만 살아남는 행위가 아니다. 어차피 상업이란 사람과 사람 간의 거래이므로 나도 살고 상대방도 함께 사는 길이 바로 정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사는 '이생이사'의 경영철학이야말로 임상옥의 상업철학이었던 것이다.
지금 대체 천리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먼저 그 길이 나 있는 곳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 뒤에야 출발행로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가 이처럼 천리길을 마다않고 찾아온 것은 길이 나 있는 곳을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눈앞이 곧 길이다. 바로 여기서부터다'라고 하였습니다. 하오나 출발하여 가야 할 곳이 그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익히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문을 나서서 가는데 진실로 앞길이 아득히 멀어서 어떻게 가야 할까 하고 생각되면 반드시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연경에 온 것을 '길을 아는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천리길은 물론 만리길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찍이 장자는 말하였소. 북주의 바다에는 곤이란 고기가 있는데 그 크기가 몇천 리가 되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 고기가 변하여 붕새가 되는데 그 붕새의 크기 또한 몇천리가 되는지 아무도 짐작하여 아는 사람이 없소이다. 이 붕새는 전혀 움직이지 않으나 한 번 마음먹고 날 것 같으면 그 날개 벌린 모습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도 같다, 그리하여 제해란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는 날개를 벌려 구천리가 되는 수면을 치고, 거기서 일어나는 엄청난 선풍일 타고 흔들면서 구만리 장천에 올라간다. 그리하여 여섯달이나 걸려서야 남녘 바다에 깃들어 쉬게 된다. 고 말입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외국인과 장사를 하는 행상을 고행 혹은 고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 고행들은 장사를 하는 데 있어 두 가지의 철칙이 있었소. 그 하나는 '성'이며, 또 하나는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었소. 중국에서 상인들은 성실과 속이지 않음을 하늘의 길이라 하여 중요한 덕목으로 보았소이다.
에로부터 사람들은 장사꾼을 '간상배'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상업에 있어 천도는 범중엄의 말처럼 '남을 속이지 않음'에 있는 것이오. 남을 속여서 일시로는 이익을 남겨 재미를 볼 수는 있을 것이오, 그러나 남을 속이면 절대로 큰 상업을 이룰 수 없는 것이오. 왜냐하면 남을 속여서는 절대로 신용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오. 신용이야말로 장사에 있어 최대의 자본이요, 재물인 것입니다.
큰 장사꾼은 비가 오거나 말거나 우산을 만드는 사람이며, 나막신을 만드는 사람이오. 왜냐하면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것은 자연의 한 현상일 뿐이기 때문인 것이오. 현상을 좇아다니는 사람은 시세를 좇아다니거나 유행을 좇아다니다가 제 꾀에 넘어가 무너질 것이오. 따라서 큰 장사꾼은 최소한 5년 후의 장래를 내다보는 계책을 세울 줄 알아야 하는 것이오.
옛말에 이르기를 '여인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하고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우명옥은 고통을 통해 인생이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며, 나고 죽는 것도 아니며, 오고 가는 것도 아닌 것을 깨달았다. 본시 그러한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을 소유하려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임을 각성하였다. 우명옥은 이제 아름다운 형태나 빛깔을 가지 그릇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헛된 욕망의 유한성을 경계하는 그릇, 즉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최종목표였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하였다. 적당히 채워라. 어떤 그릇에 물을 채우려 할 때 지나치게 채우고자 하면 곧 넘치고 말 것이다. 또한 칼은 쓸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우면 되는 것이지 예리하게 갈고자 하면 날은 지나치게 서서 쉽게 부러지고 만다. 금은보화를 지나치게 가진 자는 남의 시기를 사게 되며, 또한 부귀해져서 지나치게 교만해지면 상황이 어지러워져서 결국 모두를 탕진하게 된느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적당히 성공한 후에 그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으려고 노력해서는 안니되며 적당히 때를 보아서 물러감이 하늘의 도리인 것이다. 하늘은 만물을 낳되 소유하지 않으며, 또한 무리하지도 않고 공을 이루어도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도, 즉 자연의 도리인 것이다.
사람만이 항상 높은 곳을 찾아 앉으려 하고, 좋은 곳을 찾아 앉으려 하고, 한 번 앉으면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눈송이 하나보다도 못한 존재인 것이다.'
인간에게는 깨닫기만 하면 곧 없어지는 번뇌인 여든 여덟 가지의 견혹과 깨달아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열 가지의 번뇌인 수혹이 있다. 여기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인 탐심과 화를 내는 진심과 어리석음의 치심 등 근본 번뇌인 열 가지를 모두 합쳐서 백팔 가지의 번뇌가 있는 것이다.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쥐려는 자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 임상옥은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이 말이야말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오. 나는 평생동안 사슴을 쫓아다녔으므로 산을 보지 못하였고, 나는 평생 동안 이 아도물을 쫓아다녔으므로 제대로 사람을 만나 본적이 없소이다. 내가 사람을 본 것은 이 사람이 내게 이로운 사람인가 해로운 사람인가, 이익을 남겨줄 사람인가 손해를 끼칠 사람인가만 따져보았을 뿐 그 사람의 진면목은 보지 못하였던 것이오. 이 모든 것이 이 아도물에서 비롯된 것이오. 나는 눈 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장님에 되고 말았소. 이 모든 것도 이 아도물 때문에 비롯된 것이오. 이제 나는 이 사슴을 버림으로써 산을 볼 것이며, 금을 버림으로써 사람을 제대로 보고 싶소. 또한 이 아도물을 버림으로써 하늘과 땅의 모든 천지만물을 똑똑히 보고 싶소이다.
일찍이 내가 불문에 몸담고 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소. 한 사람이 길을 가는데 황야에서 호랑이를 만났소. 도망치다 도망치다 결국 도망친 그 사람이 두 손으로 나무덩굴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며 자신이 절벽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호랑이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소. 그 때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 그 덩굴을 갉더니만 툭, 하고 덩굴이 끊어져버리게 되었소. 떨어지는 도중 그는 절벽에 피어난 산딸기 열매를 목격하고는 그것을 따 입에 넣으며 '아아, 맛있다'고 감탄하였다는 이야기요. 우리의 인생도 절벽에서 덩굴을 붙잡고 버티는 사람에 지나지 않소이다. 그 덩굴에서 낮의 흰 쥐와 밤의 검은 쥐는 번갈아가면서 시간이 날카로운 이빨로 생명줄을 갉아내리고 있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호랑이 아가리에 잡혀먹을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산딸기를 따먹으면서 아아 맛있다고 감칸하고 있을 뿐인 것이오.
부처님이 말씀하신 재산을 없애는 여섯 가지 일은 다음과 같소이다. 첫째는 술에 취하는 일이요, 둘째는 도박을 하는 일이요, 셋째는 방탕하여 여색에 빠지는 일이며, 넷째는 풍류에 빠져 악행을 저지르는 일이며, 다섯번째는 나쁜 벗과 어울리는 일이며, 여섯 번째는 게으름에 빠지는 일이오.
술을 마시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재산을 소비하게 되고 몸에 병이 생기고 잘 다투고 나쁜 이름이 퍼지며 분노가 폭발하고 지혜가 날로 없어진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또한 도박에도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재산이 날로 줄어들고 도박에 이기더라도 원한이 생기며 지혜로운 사람이 타일러도 듣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를 멀리하며 도둑질할 마음이 생긴다. 또한 방탕에도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몸을 보존하지 못하고 자손을 보호하지 못하고 항상 놀라고 두려워하게 되고 온갖 괴롭고 나쁜 일이 몸을 얽어매고 허망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쁜 벗과 어울리는 데에도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남을 속일 꾀를 내고 으슥한 곳을 좋아하며 남의 여자를 유혹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며 재물을 독차지하려 하고 남의 허물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재산을 없애는 여섯 가지 일 중에 가장 마지막은 게으름이었소. 게으름에 대해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소이다. '게으름에는 다음과 같은 허물이 있다. 부자면 부자라고 해서, 가난하면 가난하다고 해서 일을 하기를 싫어한다. 추울 때는 춥다고 해서, 더울 때는 덥다고 해서 일을 하기 싫어한다. 시간이 이르면 이르다고 해서, 시간이 늦으면 늦었다고 해서 일하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디 게으르지 말아야한다.'
임상옥은 평소 자손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재산은 화의 문이요, 유산은 몸을 베는 칼이라며 경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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