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키케로 2011. 9. 2. 13:16


징비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서애 유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 때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유성룡은 퇴계 이황의 문인이며, 김성일과 동문수학하였다.
명종 21년(1566)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권예문관검열, 공조좌랑, 이조좌랑 등의 벼슬을 거쳐 삼정승을 모두 지냈다. 왜적이 쳐들어올 것을 알고 권율과 이순신을 중용하도록 추천하였고, 화포 등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을 세울 것을 건의하고 군비확충에 노력하였다. 또한 도학, 문장, 글씨 등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그가 죽은 후 문충이라는 시호가 내려졌고, 안동의 병산 서원 등에 모셔졌다.



 < 징비록 - 국보 제132호 >

지금까지 역사 속의 전쟁과 관련된 책의 내용은 삼국지, 수호지, 그리고 최근 김진명의 고구려처럼 우선 영웅적인 핵심인물을 통한 묘사와 영웅적인 모습이 보여서 무엇인가 계속 흥미롭게 다음이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하면서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징비록은 그런 책이 아니었다. 책의 제목처럼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하는 책' 이었다.
읽어내려가는 책의 내용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장수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 자기가 먼저 살겠다고 도망가고, 조정의 대신들은 지금 여야가 그러는 것처럼 항상 자신들의 이익만을 쫓고 다가오는 전쟁에 대해서는 대비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임진왜란' 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우리가 만들어 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제껏 이렇게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를 이렇게 비참하게, 그리고 부끄럽게 만드는 글을 쓰지 않았다.
유성룡은 객관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그 고된 시련을 잊고 싶으나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책이 바로 이 '징비록'인 것 같다.

 

< 유성룡 (1542~1607) >

김홍식이 옮긴 징비록에 그는 이런 서문을 적어두었다.

"우리는 잊고 있지만, 그분들은 수백 년 후까지 면면히 이어질 후손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수백 년 후에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 귀한 종이에 귀한 먹을 갈아 글을 남기셨습니다..."


징비록은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은 기록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첫번째는 조선시대 왕 다음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 적은 반성의 글이며 안타까움의 길이다.
바로 지금의 정치인 중에 앞으로 100년, 200년 뒤에 이렇게 기억되고 역사 속에서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아무런 노력없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모습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된다.
편안할 때는 그 안락을 단순히 즐겨서는 안된다. 그 속에서 다음을 준비하고 내면을 강화시키고 자체적인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지금 나의 모습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경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