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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번. 실용적 독서/▶ 인문

[Book] 니체는 나체다

▶ 가끔가다 이렇게 내 가슴을 "쿵"하게 내리치는 책이 있다. 
이 말은 지금 내 마음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서 그 답을 찾고 있고 새로운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말한다. 직접 선택하지 않고 선물로 받은 이 책에서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다.

예전부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어보려했다. 하지만 망설이고 있었다. 
아직은 이름밖에 모르는 [니체]의 말없는 그 무게감과 깊이에 선뜻 손을 되지 못하고 있었다.
'니체는 나체다'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내가 망설이고 확실한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니체의 사상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것으로서 니체가 있다면 따끔하게 혼을 낼 것 같은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니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그의 책을 알게 되어서 기분좋게 만드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내면의 나와 조금더 진지한 대화를 나눌 기회를 준 것 같아. 유영만 작가의 '니체는 나체다'에 고맙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밧줄 사다리로 온갖 창문을 기어오르는 법을 배웠다. 나는 민첩한 발로 높은 돛대에 오르기도 했다. (.....) 나는 다양한 길과 방법을 통해 나의 진리에 이르렀다. 내가 사다리 하나로만 먼 곳을 볼 수 있는 위치까지 오른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계속해서 물어가며 걸었다. 물음과 시도, 그것이 내 모든 행로였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자신의 다리로 높은 곳을 향해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에는 분명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키는 고통이다."


"나는 하늘을 날아갈 준비를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나의 천성이 이러한데 어찌 그것이 새의 천성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나는 중력의 악령에 적의를 품고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새의 천성이렷다. 진정, 불구대천의 적의와 최대의 적의 그리고 뿌리 깊은 적의를! 나의 적의가 일찍이 날아보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며, 길을 잃고 헤매보지 않은 곳이 어디 있던가!"


"명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언제 그 명성과 작별해야 하는지 그 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제때에 떠날 수 있기 위한 어려운 수련을 쌓아야 한다. 가장 맛이 들었을 때에도 나에게 계속 맛을 보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오랫동안 사랑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아, 너희, 사람들이여. 돌 속에 하나의 형상이, 내 머리 속에 있는 많은 형상들 가운데 으뜸가는 형상이 잠자고 있구나! 아, 그 형상이 더할 나위없이 단단하고 보기 흉한 돌 속에 갇혀 잠이나 자야 하다니! 이제 나의 망치는 저 형상을 가두어 두고 있는 감옥을 잔인하게 때려 부순다. 돌에서 파편이 흩날리고 있다. 무슨 상관인가?"


"너희는 너희에게 걸맞은 적을 찾아내어 일전을 벌여야 한다. 너희의 사상을 위해! 설혹 너희의 사상이 패배하더라도 너희의 정직성만은 그의 굴하지 않고 승리를 구가해야 하리라! 너희는 평화를 전쟁을 위한 방편으로서 사랑해야 한다. 스리고 긴 평화보다 짧은 평화를 더 사랑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권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전투다. 내가 너희에게 권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승리다. 너희가 하는 것은 노동이 전투가 되고 너희가 누리는 평화가 승리가 되기를 바란다.!"


"생은 항상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표지, 달그락거리는 표지가 되어야 한다! 생 자체는 기둥과 계단의 도움으로 자신을 높이 세우려 한다. 생은 먼 곳을, 행복을 머금은 아름다움을 내다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 생은 높이 오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높이 오를 필요가 있기에 생은 계단을, 계단과 오르는 자들이 범하는 모순을 필요로 한다! 생은 오르기를 원하며 오르면서 자신을 극복하기를 원한다."


"그대들이 큰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곧 실패한 것인가? 그리고 그대들이 실패작이라고 해서 인류 자체가 실패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인류 자체가 실패로 판명되었다고 해도 좋다! 높은 종에 속할 수록 성공하는 경우가 그만큼 드물다. 보자 지체가 높은 인간들이여. 그대들 모두는 실패작이 아닌가?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용기를 잃지 마라! 얼마나 많은 것이 아직도 가능한가! 그대들 내부에서 인류의 미래가 분투하고 있지 않은가?"


"적을 갖되, 증오할 가치가 있는 적만을 가져야 한다. 경멸스러운 적은 갖지 말도록 하라. 너희는 너희의 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적의 성공이 곧 너희의 성공이 될 것이다.


"너희들은 너희들에게 걸맞은 적을 찾아내어 일전을 벌여야 한다. 너희들의 사상을 위해! 설혹 전쟁에서 너희들의 사상이 패배하더라도 너희들의 성실성만은 그에 굴하지 않고 승리를 구가해야 하리라!"


"무언가 한 가지 능력만 있는 사람들, 그래서 누구는 귀로, 누구는 입으로 알려졌으며, 누구는 눈으로, 누구는 다리로 전문가가 되었다. 전문적인게 뭐가 문제냐고? 많이 알고 있는 게 잘못이냐고? 한 가지 능력만 키우느라 여러 가지 능력을 퇴화시킨 것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과거에 얽매이고 아래에 있는 인간과 비교해 자신을 칭찬하지 마라. 꿈을 즐거운 듯이 입으로만 내뱉을 뿐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그럭저럭 현재에 만족하며 주저앉지 마라. 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 보다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라!"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도 하고 돌아서기도 하면서 나의 과업을 수행하고 있다.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해서도 나 자신을 완성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내 자신을 위대한 방식으로 사랑할 때 나도 사라의 결실인 임신을 하는 것이다.


너, 티 없이 맑은 자여! 빛나는 자여! 너 빛의 심연이여! 네가 내 가까이에 있는 한 나는 축복하는 자요, 긍정하는 자다. 그러면 나 모든 심연 속으로 나의 축복어린, 그렇다라는 말을 가져가게 된다.


느닷없이 새로운 집들이 가지런히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의아했다. 그래서 말했다. 아니 이것들은 아니리라! 어떤 멍청한 아이가 장난감 상자에서 이 작은 집들을 꺼내놓은 것은 아닐까? 그랬다면 또 다른 아이가 나타나 그것들을 다시 상자에 집어넣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거실과 작은 방들은 또 무엇인가? 어른들이 드나들 수나 있겠나? 차라투스트라는 멈춰 서서 생각해봤다. 마침내 그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것이 작아지고 말았구나!


태양은 순박하고 창조의 열망에 불타고 있는 것들을 온몸으로 사랑한다. 저기를 봐라. 저리도 서둘러 바다가 태양을 향해 솟구치고 있지 않는가! 너희들은 그 사라의 갈증과 뜨거운 입김을 느끼지 못하는가? 바다가 천개나 되는 젖가슴으로 태양을 향해 솟아오르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미래가 불확실하고 불안하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끝난 것도 아무것도 없다. '생은 고통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들도 있는데, 거짓말이 아니다. 자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는 너희들은 이제 끝내도록 하라! 고통에 불과한 생을 끝내도록 하라!


너희들은 미래를 분만하는 자, 미래를 양육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씨 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너희들의 명예로 삼아라! 너희 자신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와 발길, 그것들을 새로운 명예로 삼아라!


누구나 높은 곳을 목표로 한 이상과 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과거의 일이었다며, 청춘 시절의 일이었다며 그리운 듯 떠올려서는 안 된다. 지금도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이상과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느 사이엔가 이상과 꿈을 버리게 되면 그것을 말하는 타인이나젊은이를 조소하게 된다. 시샘과 질투로 마음이 물들어 혼탁해지고 만다. 발전하려는 의지나 자신을 이기려는 마음 또한 버려지고 만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결코 이상과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젊은이는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진정한 실력에 의해 높은 차원에 이른 사람, 공로가 있는 사람을 찾아내 그와 교제해야 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자기만족적인 교만과 알맹이 없는 겉치레, 허세, 오만 따윈 순식간에 사라지고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눈앞에 보일 것이다.


창조적인 일을 할 때는 물론,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경우에도 경쾌한 마음으로 임하면 순조롭게 잘 진행된다. 그것은 거침없이 비상하는 마음, 사소한 제한 따윈 염두에 두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시대의 철학>

생성과 소멸, 건축과 파괴는 아무런 도덕적 책임도 없이 영원히 동일한 무구의 상태에 있으며, 이 세계에는 오직 예술가와 어린아이의 유희만이 있을 뿐이다. 어린아이와 예술가가 놀이를 하듯 영원히 생동하는 불은 놀이를 하며, 무구하게 세웠다가 부순다. 영겁의 시간 에온은 자신과 놀이를 한다. 마치 아이가 바닷가 모래성을 쌓았다가 부수듯이 이따금 그는 놀이를 새롭게 시작한다.


<선악을 넘어서>

"맛없게 이야기한 사람은 허세와 과장된 표현을 사용한다. 이것은 듣는 사람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듣는 사람도 그 의도와 저속함을 느낄 수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진심어린 흥미를 갖고 그것을 성실하게 이야기 한다. 거기에는 약삭빠른 행위가 없다. 따라서 듣는 사람은 그것에 진지함을 느끼고 화자가 가지고 있는 흥미 그 자체를 자신도 받아들이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해 들으려 한다.


<우상과 황혼>

"자신의 '왜?'라는 의문에 명백한 답을 제시할 수 있다면, 이후의 모든 것은 매우 간단해진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곧 알 수 있다. 일부러 타인을 흉내내면서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자신의 길이 눈 앞에 명료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제 남은 일은 그 길을 걸어가는 것 뿐이다."


<즐거운 지식>

"사실 사람은 대상물에서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물에 의해 촉발된 자신 안의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내고 이끌어내는 것이다. 결국 풍요로운 대상물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의 능력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요.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독창적인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이미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 있으나 아직 알아차리지 못해 이름조차 가지지 못한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나아가 그것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름이 주어지고 비로소 그것이 실제로 존재함으로써 인간은 깨닫게 된다. 그렇게 세계의 일부가 탄생한다.


즐겁제 않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힘겨운 일에서 일단 고개를 돌려서라도 지금을 제대로 즐겨야 한다. 가정 내에 즐겁지 않은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모든 이가 우울해지고, 가정은 묵직한 어둠이 드리워진 불쾌한 곳이 되어버린다. 그룹이나 조직도 마찬가지다. 가능한 한 행복하게 살아라. 그러기 위해서 현재를 즐겨라. 마음껏 웃고, 이 순간을 온몸으로 즐겨라


어쩌면 그 위인은 그저 어린아이인 채 세상의 보편적인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 그래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혹은 자유자재로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과도 같이, 시대의 흐름이나 나이에 따라 마음먹은 대로 변신할 수 있는 인간이었기에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 사람을 보라>

"이제 나는 너희에게 명한다. 나를 잃어버리고 너 스스로를 찾아라. 너희가 나를 완전히 부저했을 때 나는 너희에게 다시 돌아가리니."


삶의 가장 낯설고 가장 가혹한 문제들에 직면해서도 삶 자체를 긍정한다 : 자신의 최상의 모습을 희생시키면서 제 고유의 무한성에 환희를 느끼는 삶에의 의지 - 이것을 나는 디오니소스적이라고 불렀다


<권력에의 의지>

"인생을 쉽게, 그리고 안락하게 보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리 짓지 않고서는 한시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된다. 언제나 군중과 함께 있으면서 끝내 자신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가면 된다."


<아침놀>

하루에 열 번 주위 사람들에게 냉담한 말을 퍼부었다면 오늘부터는 하루에 열 번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말을 건네 보라. 그러면 자신의 영혼이 치유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마음도 상황도 한결 나아질 것이다.


<농담, 음모 그리고 복수>

이곳이 아닌 어느 먼 장소에, 알지 못하는 이국의 땅에 자신이 찾는 것, 자신에게 가장 맞는 것을 찾으려는 젊은이가 지나치게 많다. 실은 자신이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던 발아래에 끝없이 깊은 샘이 자리하고 있다. 추구하는 것이 묻혀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보물이 잠들어 있다.



<방랑자와 그 그림자>

"자신의 의견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깊이 파고들어 언어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물고기 화석을 사는 것보다 나은 일이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는 것이 성가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고 상자에 든 화석을 산다. 이 화석은 곧 타인의 낡은 의견이다. 그리고 그들은 돈을 주고 산 의견을 자신의 신념으로 삼는다. 그런 그들의 의견은 살아 있음의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항상 그 상태로 정체해 있다.

"여행지에서의 관찰과 체험을 그대로 멈춰두지 않고 자신의 업무나 생활속에 살려 풍요로워지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라는 여로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때그때의 체험과 보고들은 것을 그저 기념물로만 간직한다면 실제 인생은 정해진 일만 반복될 뿐이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든 다시 시작되는 내일의 나날에 활용하고, 늘 자신을 개척해가는 자세를 갖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최고로 여행하는 방법이다."

"비록 많은 체험을 했을지라도 이후에 그것을 곰곰이 고찰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될 뿐이다. 어떤 체험을 하든지 깊이 사고하지 않으면, 꼭꼭 씹어 먹지 않으면 설사를 거듭하게 된다.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며 무엇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가끔은 등을 굽히고, 가능한 한 자세를 낮추듯 웅크리고 앉아 풀과 꽃, 그 사이를 춤추는 나비를 가까이서 바라보라. 지금껏 그저 멀리서 내려다 보기만 했던 그곳에는 풀과 꽃, 곤충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어린아이가 매일 당연한 듯 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 펼쳐진다.

일은 머리로 세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현실의 그 '무엇'이 먼길을 가장 짧은 길로 만들어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사전에 알 수 없으며, 현실에 발을 내딛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본 몽블랑 주변 산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풍부한 표정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몽블랑은 가장 높은 봉우리로 천연의 아름다음에 싸여있다'는 관광적인 지식 때문에 사람들의 눈은 몽블랑에만 머무른다. 이래서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즐길 수 없다.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 지금 보고 있는 아름다움을 인정하라

지혜로워라. 기쁨을 품어라. 가능하다면 현명함도 더하라. 그리고 마음에는 언제나 기쁨을 간직하도록 하라. 이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점이나 결점을 누구도 보지 못하게 숨겨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마치 강점의 변형인 듯 위장해 내보인다. 그 점에 있어서 타인보다 교활하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결점과 약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람은 자신의 약점에 대해서는 보고도 보지 못한 척 외면한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그것을 똑바로 마주하며 자각한다. 그것이 보통사람과 그들의 차이다.

산을 오른다. 짐승처럼, 망설임도 없이, 땀범벅이 되어 오직 정상을 목표로 오를 뿐이다. 오르는 동안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의 풍경이 펼쳐질 테지만, 오로지 높은 곳을 향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여행이든 늘 하는 일이든, 하나의 것만 탐닉하고 다른 것은 환전히 잊어버린다. 사람은 그 같이 우매한 짓을 때때로 저지른다.

배우고 지식을 쌓고 지식을 다시 교양과 지혜로 넓혀가는 사람은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이전보다 한층 더 흥미로워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그 사람은 평범한 것에서 교훈이나 단서를 간단히 찾아내고 사고의 틈새를 메울 무언가를 발견한다. 결국 그의 나날은 수수께끼 풀이와 진배없는 지식 획득의 재미로 채색되고, 의미있는 충만함으로 채워진다.


"한 구석에서 천하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 비판자나 회의주의자, 독단론자, 역사가, 시인, 수집가, 여행자, 수수께끼 해독자, 도덕주의자, 예언자, 자유주의자 등 거의 모든 유형의 인간이 되어보아야 한다."


니체는 절대긍정주의자다. 그는 부정 속에서 긍정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실패 속에서 성공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병균 속에서 치료의 백신을 찾아내듯 니체는 상처로부터 치료의 힘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외친다. "그래, 올 테면 와봐라. 나의 운명이여! 나는 나의 고통과 나의 실패를 사랑하겠다. 거룩하게 긍정하겠다."

니체에게 삶은 살아야 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대상이 아니다. 거룩하게 긍정하는 그 무엇이다. 그는 어떤 운명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괴로워도 슬퍼도 그것이 내 운명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니체의 운명애다. 

한국 경영철학의 대가 윤석철 교수다 "생(生)은 명령이다 생존 경쟁이 아무리 어렵고 부조리가 난무해도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명" 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넘어질수록 더 강해져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