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책을 읽기 전이다. 이 유명한 책을 아직까지 읽지 않았다니 정말 나 자신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안타까움에 가능하면 빨리 [노인과 바다]를 읽고 마음에 간직해보려고 한다.
이 책의 내용은 여러 부문에서 인용되고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바로 그 근본이 튼튼하고 따듯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기에 ~ 부끄럽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렇게 잡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읽기 전에 잠깐 책의 내용과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해서 조금 살펴보려고 한다.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대표작으로 늙은 어부의 고독한 싸움을 통해 인간의 존업성을 그려낸 작품으로 퓨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오랫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한다. 이러한 바다의 냉혹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구도 나가지 못했던 먼 바다를 행해 물살을 가른다. 노인의 불패 정신은 근본적인 인간 승리의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 그의 사투를 통해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해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 1899.7.21 ~ 1961.7.2 )
"인간을 멸(滅)할 수는 있으나 패(敗)하게 할 수는 없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 노인과 바다 -
"인간을 멸(滅)할 수는 있으나 패(敗)하게 할 수는 없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 노인과 바다 -
가장 영향력있는 20세기 미국 작가를 꼽아야 한다면 헤밍웨이를 빼놓고 손가락을 헤아릴 수 없다. 박사 학위 논문 등 그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계속 쏟아지고 있으며 1980년에는 헤밍웨이 학회가 결성됐다. 헤밍웨이 닮은 사람 찾기 콘테스트도 있다. 한때 "헤밍웨이 산업은 불황을 모른다"는 말까지 있었다. 50년대 미국인들은 대통령 얼굴과 더불어 헤밍웨이의 얼굴은 알아봤다.
그의 문체는 혁신적이었다. 헤밍웨이 다음에 나타난 작가들은 그의 모범을 따르거나 피하거나 어쨌든 헤밍웨이 문체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헤밍웨이 문체가 미국문학에 큰 해악을 끼쳤다는 말도 있다.
헤밍웨이는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충분히 알고 있는 작가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생략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글에 작가의 진실성이 담기면 독자는 작가가 생략한 것들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헤밍웨이에게 감정은 작가가 서술하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스스로 느끼게 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는 노인과 바다의 무대이자 집필이 이뤄진 쿠바에서 1939년부터 1959년까지 거주했다. 성인이 된 뒤 가장 오래 머문 곳이다. 여기서 피델 카스트로와 약간의 친분을 맺기도 했다. 헤밍웨이는 쿠바 혁명을 환영했으나 결국 쿠바에서 쫓겨나게 된다.
헤밍웨이는 4번 결혼하고 3번 이혼했다. 많은 사람이 그가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분석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대작을 내놓을 때마다 새로운 여자가 필요했다. 윌리엄 포크너도 이렇게 말하며 살짝 비꼬았다.
"헤밍웨이의 실수는 사랑하는 여성 모두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문체는 혁신적이었다. 헤밍웨이 다음에 나타난 작가들은 그의 모범을 따르거나 피하거나 어쨌든 헤밍웨이 문체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헤밍웨이 문체가 미국문학에 큰 해악을 끼쳤다는 말도 있다.
헤밍웨이는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충분히 알고 있는 작가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생략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글에 작가의 진실성이 담기면 독자는 작가가 생략한 것들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헤밍웨이에게 감정은 작가가 서술하는 게 아니라 독자들이 스스로 느끼게 해야하는 것이었다.
그는 노인과 바다의 무대이자 집필이 이뤄진 쿠바에서 1939년부터 1959년까지 거주했다. 성인이 된 뒤 가장 오래 머문 곳이다. 여기서 피델 카스트로와 약간의 친분을 맺기도 했다. 헤밍웨이는 쿠바 혁명을 환영했으나 결국 쿠바에서 쫓겨나게 된다.
헤밍웨이는 4번 결혼하고 3번 이혼했다. 많은 사람이 그가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분석에 따르면 헤밍웨이는 대작을 내놓을 때마다 새로운 여자가 필요했다. 윌리엄 포크너도 이렇게 말하며 살짝 비꼬았다.
"헤밍웨이의 실수는 사랑하는 여성 모두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