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에 나왔던 장녹수의 머리 모양을 기억하는가. 풍성하게 땋은 머리카락을 머리에 빙 둘러 여배우의 가는 목을 압박하던 가체 머리, 당시 여인들은 머리를 왜 그토록 무겁게 장식했을까? 20여년 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궁중 여인들의 머리를 책임지고 있는 고전머리연구소 손미경 소장을 만나 가체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 봤다.
"삼국 시대부터 여인들은 머리숱이 많아 보이도록 가발을 이용했어요. 요즘처럼 함성섬유가 없던 시절이니 물론 진짜 머리카락을 썼죠. 그래서 가발은 고가품이었는데 재밌게도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외치던 조선시대에 가장 높고 큰 가발이 유행했어요."
조선 시대 여성들의 실루엣은 큼직한 머리에 가냘픈 상체, 풍만한 하체가 기본이었다. 그 탓에 가체는 클수록 멋진 것이었고, 점차 그것이 부의 상징이 되었다.
"가체를 온갖 보석으로 장식하면 그 갑이 중인의 집 열 채와 맞먹는 것도 있었어요. 게다가 시어른께 인사 올릴 때는 가체를 하는 것이 통례여서 혼례 때 논밭을 팔아 가체를 마련했지요. 이런 며느리가 가체 무게를 못 이겨 목이 부러졌다는 기록도 있어요. 가체의 무게가 쏠리는 정수리를 보호하기 위한 솜뭉치인 어염족드ㅜ리도 그런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죠."
그렇다면 그 많은 머리카락은 다 어디서 났을까?
"비구니나 죄수, 천민의 머리키락이 매매됐어요. 물론 가난한 살림 탓에 머리카락을 파는 아낙도 있었죠. 함경도 남자들은 잘린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도록 검은 두건을 스고 햇빛 아래 앉아 있었대요. 가난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일이죠."
궁중에서는 혼례나 연회 때마다 비빈들이 쓸 가체를 올리라는 공문을 전국에 띄웠다. 백성들의 머리카락을 사치스런 머리 장식으로 썼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 폐단을 보다 못한 정조는 가체 금지령을 내리고 순검을 시켜 단속했어요. 그 덕에 우스운 공갈범들이 생겨났는데, 가체를 할 만한 집에 들어가 자신을 순검이라 속이고 관아에 고발하지 않을 테니 금품을 내라고 협박했답니다."
목이 부러져도, 공갈 협박을 받아도 수그러들 줄 모르던 가체의 인기는 순조 때에 쪽진 머리가 일반화되면서 마침내 비녀에 그 자리를 내줬다.
- 좋은 생각 2006년 5월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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