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 견제와 집중해서 균형을 반복한다. 의식을 가다듬고 집중해서 무의식을 들여다보면 마치 지독하게 잘게 부서진 파편 같다. 그런데 이 파편들은 나의 의식이 약화되었을때, 수면 위로 떠올라 의식을 교란한다. 의식이 정돈되어 무의식을 잘 통제하고 있을 때는 바닥에 가라앉아 있지만, 의식이 산만하거나 집중력이 느슨해지면 장마철 호수 위에 떠오른 쓰레기더미처럼 나의 의식을 오염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긴장을 늦추며 살아가면 나의 의식은 늘 무의식과 함께하게 된다.
무의식은 치명적인 약점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긍정적이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들은 의식의 흐름 속에 자리잡지만, 부정적이고 잊고 싶은 것들은 의식의 가위질로 편집되어 깊은 심연 속에 조각조각 던져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을 잘 통제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적어보라고 하면 장점과 단점 항목을 최소한 비슷하게 나열하지만, 무의식이 통제되지 않고 의식의 틈새에 얼기설기 끼어 있는 사람들은 장점은 두세 개에 불과하고 단점은 수십 개나 적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가치관과 목표의 이정표를 바로 세울 수 없다. 가치관에 대한 판단도 명료하지 않고, 그에 ㄸ른 목표도 자신의 장단점을 분석한 결과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결정하게 된다.
청년들에게 가치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외부 요인들만 가득해서 좋아보이는 것, 기발하고 멋져 보이는 목표들만 들어있는 경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나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나의 강점과 재능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바탕 위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나를 소외시키고 남들에게 성공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추상적인 망상만 가득한 셈이다.
목표를 세울 때는 반드시 나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의식을 집중해서 무의식을 가만히 탐색하고, 나의 장점과 단점을 잘 비교한 다음, 최소한 장점 항목이 단점을 능가할 때, 장점들을 잘 모아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재능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결정한 다음, 그 분야에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을 찾아 그것을 나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때 의식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이 끼어들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방법은 물론 나쁜 습관을 제거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나의 단점들 중에서 버릴 것을 검토하고, 하나하나 차례로 제거해나가야 한다. 나쁜 줄 알면서도 달콤함에 취해 포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해서 끝까지 그것을 결행할 인내심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리지 못하면서, 새로운 것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이때 명심할 것이 있다. 단발적으로 버리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일요일 아침에 게으름을 버리고 등산을 한 번 하거나, 밀린 청소를 한꺼번에 해버리겠다는 결심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결심이다. 정말 버려야 하는 대상은 장기적 인내가 필요한 것들이어야 한다. 잠을 참아내거나 담배를 참아내거나 술을 참아내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늘 그것과 투쟁을 해야 하는 것들을 버리기로 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긴 투쟁을 이겨나가면 그것이 곧 새로운 습관으로 이어지고, 의식은 명료해진다. 의식이 본능을 통제하고 극복하면서 필요한 일을 행하는 인내로 이어졌다면, 이미 의식의 통제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 그것을 습관화함으로써 강고한 자아를 구축하고, 산만하고 저급한 무의식을 의식의 바다 밑 깊은 골짜기로 밀어버리면 된다.
그로서 우리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다음 우리가 단단한 바탕을 딛고 자신의 길을 심장이 터질 만큼 힘차게 달려나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아우라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삶은 불행하지 않다. 우울의 여지도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달콤한 말에 현혹될 필요도 없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무의식의 노예가 되라는 뜻이다. 긍정은 당의정이 아니다. 긍정의 태도를 몸에 익히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느껴지는 자존감이 바로 긍정의 힘을 발휘한다.
이 길에서는 무언가 이루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최선을 다하는 삶 자체가 중요하다. 훗날 '지난 20년간 나는 이런 것들을 이루었다'고 회고한다면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인간은 상대적 욕망 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신보다 뛰어난 성취를 이룬 사람을 쳐다보게 되어 있고, 그것은 다시 상대적 열등감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20년간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라고 말할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주인이 되는 삶, 결과를 돌아보지 않고 과정을 중시하는 긍정적 삶의 뿌리다.
주어진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최악/차악뿐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상황에서 던지는 주사위에는 최선/차선의 선택이 있다. 기다린다고 상황이 명료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밤안개는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진다. 빨리 지나가야 한다. 안개가 옅어지기를 기다리다 결국 새벽을 맞는다. 인생이 바람처럼 지나가버린 것이다.
다만,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새로운 것을 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마리의 토끼를 쫓지 말라는 것은 패배자의 논리다. 지금 만약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를 쫓아라. 지금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그만큼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불필요한 순서대로 나에게 붙어있는 나쁜 습관의 찌꺼기를 떼어내고, 시간을 압축해서 밀도를 높이고, 포키가 터지고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집중해가면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성급해할 필요는 없다. 물은 99도가 될 땎지 끓지 않는다. 100도가 되기를 기다리는 인내와 여유가 필요하다. 내가 노력하고 있다면 기다림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발표과정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시작해서 당장 성과를 얻는 것은 그야말로 운이다. 우연히 시작한 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렸다는 이야기에 솔깃하고 주눅이 드는 것은, 이탈리아의 어떤 사람이 사상 최고액의 로또에 당첨된 것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과 같다.
하필 행운의 여신이 나만 피해갈리 없고, 하필 불행의 여신이 내 발목만 잡을 리도 없다. 인생은 정직한 것이다. 묵묵히 걸어가라.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바로 필자의 인색에서 아쉬웠던 점이자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지금 이 에필로그를 쓰고 있는 순간, 필자는 심신고갈 상태에 직면했다. 불과 석 달 사이 뜨거웠던 청춘콘서트가 진행되었고, 좋은 선배이자 멋진 친구인 안철수 교수로 인해 촉발된 큰 사회적 변화의 현장을 지켜봐야 했으며, 그 와중에 밤을 세워가며 이 책의 탈고를 마무리했고, 그 전후로 10년간 진행하던 MBN에서의 방송진행과 KBS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라디오 진행자 역할을 모두 그만뒀다.
지난 48년 필자의 삶에서 가장 뜨거웠던 여름이었던 셈이다. 이후 완전히 탈진 상태에 빠졌다. 정말 뇌가 모두 녹아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조금도 아쉽지 않다. 정말 처음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결과가 무엇이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전부다. 지금 이 순간 그 이상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필자도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시작은 늘 두근거린다. 그것은 이 책을 읽는 후배들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의 두근거리는 시작을 진심으로 성원하고 싶다. 진짜 파이팅이다.!
안동으로 돌아와서..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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