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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번. 실용적 독서/▶ 인문

[Book]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국내도서>인문
저자 : 안광복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0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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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는 글> 중에서

괴짜 같은 철학자들도 실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인정받고 싶어하고, 사랑을 꿈꾸며, 괴팍한 부모 때문에 고민한다. 때로는 변화를 꿈꾸기도 한다. 내 가슴속 고민을 철학자들의 삶 속에서 찾아보라. 짝사랑에 마음 태운다면, 키르케고르가 어떻게 연애를 했는지 알아보자. 교회 나가라고 들들 볶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짜증이 벌컥거린다면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어라. 철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아, 그래! 이건 내 고민과 똑같아!"라고 느껴지는 순간, 그때가 바로 나의 철학의 출발점이다. 비로소 철학이 내 삶에 쓸모 있는 무엇으로 다가올 것이다.

▶ 책을 펼쳐들며

이제 내 나이도 서른살이다. 이제는 20대의 청춘이라고 말하기도, 40,50대의 연륜과 경험을 논하기도 부끄러운 나이다. 그만큼 나에 대한, 자아에 대한 성찰과 확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은 좁게는 나 자신과 넓게는 찾을 수록 넓어져가는 사유와 사색의 세계이며, 우주를 논하기도 하는 그런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철학에서 주로 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철학자들이 어떤 그들의 사색과 사유를 논하는지.. 그러기에 선택한 것이 이 책인 것 같다. 바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제 부터 나의 철학에 대한 사유가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금더 성숙하고 나를 알아가자.. 조금씩 차근차근


살펴보기

제1장 신이 숨 쉬는 세계, 인간의 길은? - 탈레스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 탈레스(기원전624? ~ 기원전546)

- (철학의 출발)
- "우주의 이치를 탐구한다는 분이 발밑의 웅덩이도 못 보다니요!"
-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 '지구는 물 위에 떠 있다.'
- '세상의 모든 것은 신으로 가득 차 있다'
- 탈레스는 철학의 아버지답게 우리에게 충고를 건넨다. 치열한 일상에서 한 발 물러서서 넓고 깊게 세상과 삶에 대해 통찰해 보라. 무엇이 진정한 세상의 모습인지를 고민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릴 때, 우리는 다람쥐가 쳇바퀴 위에서 경쟁하는 듯한 생활에서 벗어나 진정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탈레스는 우리에게 철학적 반성의 가치를 일깨운다.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540~기원전480~) & 파르메니데스(기원전515?~기원전445?)

- (최초의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

- '만물은 흐른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는 없다.'   -- 헤라클레이토스
-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 '세계는 불타오르기도 하고 꺼져가기도 하는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 변하는 현실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정의로움과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자세, 이것이 헤라클레이토스가 강조하려는 바였다면 우리는 그를 최초의 현실주의자라 부러도 좋을 듯 싶다.
-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다'   -- 파르메니데스
- 그의 논증은 존재론이라는,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를 낳았다.      -- 파르메니데스
- 진리의 길을 따라 냉철한 이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계는 결국 커다란 존재하나일 뿐이다.
- 실제로 철학의 역사를 보면, 감각과 현실 세계를 경멸하고 이성적 사고를 중시하는 철학의 전통은 파르메니데스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 (기원전470~기원전399)

- (지혜를 낳는 산파)

- 아버지(석공), 어머니(산파)
- 소크라테스는 아주 못생겼었다고 한다.
- 자신의 지식과 신념이 과연 제대로 되었는지, 의미 있는지를 검토하며 마음 깊숙이 박힌 독단과 선입견을 제거하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다.  편견과 독선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이 올바른지 고민하고,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것, 이것이 진정으로 철학하는 이들의 자세이다.
- 델피 신전 기둥 : 너 자신을 알라
- 소크라테스 자신이 알고 있던 유일한 사실은 '자신이 진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는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다. 현명해 보이는 이들도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몰랐지만, 자신이 진리를 알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릇된 확신은 험한 산길을 마치 길을 다 안다는 듯 눈을 가리고 성큼성큼 걷는 만큼이나 위험하다
- 논박술은 소크라테스가 직접 상대방에게 틀렸음을 가르쳐 주지 않고, 상대방 스스로 생각하게 하여 자신의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만드는 방법이다.
- <<소크라테스의 변명>> : 플라톤

플라톤 (기원전427? ~ 기원전347)

- (플라토닉 러브, 이데아를 추구하라)
- 아버지(아테네 왕가의 후예_, 어머니(위대한 정치가 솔론의 후예)
- 엘리트 코스~
-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 - 화이트헤드
- 스무살이 되던해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경험으로 충격 ~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됨
-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플라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가장 정의로운 이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해 배신감을 늒ㅆ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다수의 어리석은 통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이데아란 객관적이고 불변하며 완전한 사물의 본질이다.
- 선의 이데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철학자이다. 민주주의라는 허울 아래 자신의 이익밖에 못 보는 어리석은 다수가 통치하는 사회는 결코 정의롭지 않으며 타락하게 마련이다. 올바름의 이데아를 알고 있는 철학자가 권력을 쥐고 통치할 때에만 비로소 사회는 정의로우며 이상 국가에 다다른다. 플라톤의 이런 생각을 '철인 통치론'이라 부른다.
- 아테네 근처 아케데모스 숲에 최고의 인재를 기를 학교를 연다. '아카데미아' ~ 할술 기관 이름에 곧잘 쓰이는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원조가 이 학교이다. 학교 정문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을 들어올 수 없다.'
- 여든 살의 나이로 눈을 감다.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다. 그가 쓴 35편이 넘는 '대화편'과 많은 편지들은 지금까지 온전한 형태로 전해진다. 플라톤의 철학 저술은 대부분 대화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그런 글들을 대화편이라 한다
- 플라톤은 기하학, 우주론, 변론술, 정치학, 음악 등 방대한 주제에 걸쳐 많은 저술을 남겼다.
-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사는 사람이 정의란 무엇인지, 왜 우리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지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제대로 된 삶을 살려는 사람이라면 올바른 삶이란 어떤 것인지,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마련이다. 이런 물음은 완전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시대가 바뀌더라도 계속 터져 나올 것이다. 플라톤은 이런 물음들을 처음으로 이론적인 틀로 정리하고 논리적인 해답을 구했다.
- 모든 발전은 이미 있던 것에 대한 검토와 비판을 통해 이루어진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멈추지 않고 그 너머의 이데아를 추구한 플라톤 철학은 정의로운 삶과 사회로 도약하기 위한 사색의 발판으로서 여전히 훌륭하게 쓰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384~기원전322)

- (행복과 중용, 극단을 피하라)
- 아버지(어의-의사)
-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사상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비판했다. 그를 이해하면 그리스 철학 전체에 대한 감이 온다. 나아가 그의 사상은 서양 중세 신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를 알면 기독교 사상도 상당 부분 정리되는 이유다. 그뿐 아니다. 뉴턴과 데카르틑 비롯한 근대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반박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근대 사상을 알려면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를 파고들어야 한다.
-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배움
- 플라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음, 스승 플라톤은 '이 친구에게는 채찍이 아니라 고삐가 필요해'
- 플라톤은 놀랍도록 발전을 거듭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아카데메이아의 전신'이라고 치켜세움
- <<니코마코스 윤리학>> : 10권으로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로, 그의 아들 니코마코스가 편집하여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 불린다.
- 패션 감각이 뛰어났던 철학자
-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행복한 삶이란 결코 쾌락적이이고 무절제하지 않다. 무절제한 삶은 결국에는 더 큰 고통만을 가져다준다. 행복은 쾌락과 도덕 사이의 균형을 잃지 않는 데서 온다. 이런 태도는 '중용'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주용이란 극단을 피한다는 뜻이다.
- 42세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의 열세 살 난 황태자 알렉산더의 스승이 된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에 따르면,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저는 권력이나 영통를 넓히는 일보다는 선을 아는 데서 남들 보다 뛰어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단다.
- 양떼를 보호하는 신인 리케이오스를 모시는 신전 근처에 '리케이온'이라는 학당을 열었다. - 그와 그의 제자들을 소요학파라고 부름..
- 리케이온에섯 학생들을 가르친 12년은 그의 학문적 삶에서 최고 절정기였다. 제자인 알렉산더는 스승의 연구비로 800달란트(400만달러)를 지원
-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10세기경 아라비아로 수출되어 오히려 그곳에서 더 활발히 연구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시 유럽 무대에 등장한 것은 1225년, 아라비아어로 번역된 그의 책이 다시 라틴어로 옮겨지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걸출된 기독교 학자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유럽 지성사의 기둥으로 자리잡음
- 세계를 객관적인 물리 법칙에 따라 설명하는 근대 과학이 발달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세계관은 비과학적이고 권위적인 것으로 온갖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근대 과학 문명에 대한 대안으로 다시금 주목 받는다.  근대 자연과학은 세계를 이용 가능한 물질로만 보았다. 환경오염 등 수많은 문제는 그래서 생겼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세계 전체에서 사물 하나하나, 생명 하나하나가 무슨 의미와 가치를 지녔는지를 따진다. 환경, 유전자 복제 등 현대의 민감한 도덕적 문제들을 과학적 문제로만 취급해서는 올바른 결론에 이르기 힘들다.세상을 전제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세부적인 문제가 지니고 있는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행복과 중용, 극단을 피하라 _ 아리스토텔레스
금욕하는 쾌락의 정원 _ 에피쿠로스
섭리를 따르는 삶 _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354~430)

- (기독교 신앙의 주춧돌)
- 다른 종교에 맞서 기독교를 옹호하는 이론을 세우고 정리한 성직자를 교부라 하는데 대표적인 교부이다.
- 아버지(전형적인 중산층 로마인), 어머니(신앙심이 두터움)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 (신앙과 이성, 신에게로 가는 두갈래 길)
- 아버지(귀족/무장)
- 토마스는 체격이 무척 컸으며 한 번 하기로 마음 먹으면 절대로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승부사 기질을 지님
- 토마스는 자신의 높은 학식을 감추는 ㄱㅁ손한 마음을 지녔다. 반면, 누군가 옳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이를 바로잡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진리를 사랑하기도 했다. 스승 알베르투스는 그의 성품과 재능을 잘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토마스를 놀릴 때마다 알베르투스는, '너희들은 벙어리 황소라고 이 아이를 놀리고 있다. 그러나 장차 황소가 울부짖으면 그 소리에 전 세계가 벌벌 떨 것이다' 라고 읊조리곤 했다.


신앙과 이성, 신에게로 가는 두 갈래 길 _ 토마스 아퀴나스

제2장 과학과 신앙의 이중주, 탈출구는? - 마키아벨리에서 칸트까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_ 마키아벨리
지식은 힘이다 _ 프랜시스 베이컨
평화를 사랑한 야수 _ 토머스 홉스

데카르트(1596~1650)

- (이성이 중심이 된 세상을 열다)

- 아버지(부유한 법률가), 어머니(그를 낳고 13달만에 폐결핵으로 사망)
- 아침 늦게까지 침대에서 사색하는 습관이 그에게는 수업보다 도움이 되었던 셈이다. 그 뒤 늦게 일어나는 것은 데카르트의 습관으로 굳어졌고, 이 습관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 그의 까다로운 학문 기준을 만족시킨 분야는 수학뿐이었다. 어떤 편견도 감히 존재할 수 없는 냉철한 이성과 논리의 학문인 수학에서, 그는 확실하고 엄밀한 학문의 모델을 보았다.
- 군대에 간 계기
: 지금부터는 나 자신과 세계라는 커다란 책 외에는 다른 지식을 찾아 헤매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내 젊음의 나머지를 여행하고 궁정과 군대를 둘러보고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과 사귀며 운명이 던져 주는 여러 사건 속에서 자신을 시험해 보고 도처에서 부딪히는 사물들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나 자신의 행위를 꿰뚫어 보고, 참과 거짓의 구별을 배우려는 소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 <<방법 서설>> <<성찰>>
- <<방법 서설>>에서 데카르트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네 가지 규칙을 제시했다.
첫째. 분명하게 참인 것만 받아들일 것
둘째, 문제를 다루기 쉽도록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검토할 것(분석)
셋째, 분석으로 밝혀진 단순한 진리에서 순서를 좇아 복잡한 것에 이를 것(종합)
넷째, 혹시 빠뜨린 점이 없는가를 검토할 것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는 근대 서양 사상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진리의 근거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사고에 놓이게 되었다. 나아가 이 명제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봄으로써, 자연 속의 그 어떤 것보다 한 차원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다. 따라서 동물을 비롯한 다른 존재들은 단순한 물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은 이성을 갖고 있으며, 바로 이때문에 여느 존재보다 존업하다.
- 그러나 그의 사상은 수많은 부작용도 낳았다. 이성을 지닌 인간이 존엄하다면 그렇지 못한 자연의 모든 것은 한낱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도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다.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인간이 얼마든지 이용하고 파괴해 버려도 되는 대상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정열과 육체에서 오는 욕구도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흐리는 불건강한 것, 억제해야 할 부정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다락방의 합리론자 _ 스피노자
합리주의의 절정 _ 라이프니츠
왕이 왕답지 못하면 엎어버려라 _ 로크
철학은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_ 흄
파렴치를 분쇄하라! _ 볼테르
자연으로 돌아가라 _ 루소

칸트(1724~1804)

-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속 도덕법칙)
- 쾨니스히스베리크에서 태어남. 칸트는 이 도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살았다.
- 칸트는 강사 일을 하면서 독특한 교육 원칙을 하나 세웠다. 중간 수준의 학생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칸트의 말을 빌리자면 '바보는 도와줄 길이 없고 천재는 자기 힘으로 해 나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1770년 46세가 되던 해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수가 됨
- <<순수이성비판>> 51세 - 칸트는 이 책에서 세계를 과학의 세계와 과학이 밝힐 수 없는 세계로 나누었다. 과학의 세계에서 칸트는 인간의 경험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흄이 무너뜨린 경험의 확실성을 다시 세웠다. 흄은 경험의 확실성을 바깥에 대상을 두어서 회의론에 빠졌다면, 칸트는 그 확실성을 우리의 정신이 경험을 만들어 내는 구조에서 찾았다.
-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 칸트는 '좋았어'라는 말을 남기고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그의 묘비에는 <<실천이성비판>>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적혀 있다.
..... 더욱 빈번하고 지속적으로 생각하면 할수록 그 두 가지 것은 나의 심정을 경탄과 경외심으로 가득 채운다. 즉 내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 속의 도덕 법칙


제3장 절대정신에서 GAD 지수로, 철학의 해결사는? - 헤겔에서 가다머까지
절대정신의 철학자 _ 헤겔
지극한 사랑이 낳은 염세주의 _ 쇼펜하우어
보이고 증명할 수 있는 것만 믿는다 _ 콩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_ 벤담
돼지의 철학에서 인간의 철학으로 _ 밀
신 앞에 선 단독자 _ 키르케고르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_ 마르크스
허무를 딛고 일어선 초인 _ 니체
지식은 도구다 _ 듀이
현재 프랑스 왕은 대머리이다? _ 러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 _ 비트겐슈타인
판단 중지, 다시 생활 세계로 _ 후설
존재를 둘러싼 거인들의 싸움 _ 하이데거
사상계의 제임스 딘 _ 사르트르
모든 물음은 가치가 있다 _ 하버마스
문명의 비밀코드 - 광기, 성, 병원, 감옥 _ 미셸 푸코
열린 사회를 꿈꾼 비판적 합리주의자 _ 포퍼
이해는 역사적이다 _ 가다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