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와 유난히 극성맞았던 모기들은 매년 누군가와 약속을 했다는 듯이 시원한 바람과 형형색색의 나뭇잎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모습을 숨겼다. 금요일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우리 집 앞의 전봇대에는 여기 저기 골목길에 나온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여기 저기 살펴보니 대충 이 골목 근처에 사는 남자아이들은 다 나온 듯하다. 여름에 길고 길었던 낮은 이제 점점 밤에게 자리를 빼앗겨 이제는 하늘이 살짝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엇이 바쁜지 서둘러 술래를 뽑는다. "가위바위보" ... 여기저기 말이 많다. '너가 늦게 냈잖아.' '바꾸면 어떡해' 이때 한 놈이 말한다. '안내면 술래 가위바위보' 이런 저런 말을 하던 놈들도 얼른 주먹, 가위, 보 중에 하나를 골라 낸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다가 결국 술래 한 놈을 뽑아 놓고 만다. 그들만의 하나의 룰이었다.
그들은 어떤 걸 하자라는 말 조차 하지 않았다. 으레 어두컴컴해지는 그 때 하는 놀이는 술래잡기 였을 뿐이다. 한놈, 두놈 짝을 지어서 여기저기로 도망다닌다. 누구는 동네를 한 바퀴를 돌고 누구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술래 뒤에 있는 리어카 뒤에 몸을 숨긴다. 어떤 놈은 마치 멍청한 오리마냥 큰 덩치가 삐져나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얼굴만 깊이 숨겨 버린다. 정말 이 골목에는 별의 별 놈들이 다 있다.
정말 그때는 몰랐다. 그런 별 것도 아닌 것이 이렇게 가슴에 많이 남을지, 비록 다른 동네 아이들보다는 잘 살지 못하고 경부선과 수인선과 미군부대로 둘러쌓여 마치 성곽에 쌓인 듯했던 이 동네가 이렇게 생각이 날지는 몰랐다.
그립기는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곳이다. 이런 소소하고 재미난 어린 시절의 추억도 있지만 이런 저런 소란과 집안의 다툼과 혼자 울며 잤던 시간이 더 생각나기도 해서이다. 그래서 기억은 나지만 가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지금의 나를 만든 것 중에 어느 정도는 20여년 가량 살았던 우리들 만의 성곽 속 기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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